[UX Design] 4화. 도허티 임계, 힘에 따른 책임

서비스의 유예시간 '도허티 임계',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10. 서비스의 유예시간
도허티 임계

우리는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 로딩 화면을 기다리며 익숙하게 보는 화면이 있다. 그것은 서비스를 로딩하는 시간을 알려주는 진행표시줄로 많은 서비스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진행표시줄을 사용하는 이유 역시 심리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용자가 작업을 완료하려 애쓰는 중에 처리 속도는 더디고, 피드백도 없으며, 로딩도 오래 걸리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금세 불만을 느끼고 부정적인 인상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로딩에 대한 속도 문제를 기술적 문제로 치부하지만, 훌륭한 사용자 경험의 핵심으로 디자인 요소로 간주해야 한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함을 느끼다 못해 작업을 포기하는 사용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한 연구는 수없이 많다. 특히 느린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발견을 바탕으로 한 표준이 도허티 임계(Doherty threshold)이다.
도허티 임계는 사용자와 컴퓨터의 생산성을 높이는 규정 시간을 0.4초로 정의한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규정된 0.4초의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려도 개선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활용되는 디자인 요소가 처리 시간의 피드백을 제공하는 진행표시줄이다. 진행상태 표시자(Progress indicator)라고도 불리는데 연구에 따르면 정확도와 상관없이 진행표시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용자는 대기 시간을 더 관대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위의 지메일 이미지 예시는 가장 간단하고 보편적인 시각화 형태의 진행표시줄이다.

그러나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반응 시간의 문제는 느릴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빠른 상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너무 빠른 처리 속도는 사용자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며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이는 백신과 보안 검사 등의 서비스에서 주로 고려되는 요소로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점검 작업 시간을 늘리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능은 개발팀만 고민하면 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적 요소로 다룰 수 있다.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이지 않은가? 서비스 대기 시간을 조절하는 문제는 UX의 아주 큰 컨셉 중 하나이다. 이는 즉 대기 시간 문제가 사용자 경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며, 대기 시간 조절을 가장 먼저 시작한 Turbotax를 예로 들 수 있다. Turbotax는 미국의 연말정산 어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 시작 당시 사용자의 정보를 1초도 걸리지 않는 빠른 시간에 해결하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이런 빠른 속도는 사용자의 신뢰를 떨어트렸으며 이후 시간을 조절하게 된다. 해당 현상은 Labor illusion이란 용어로 정의되어 다양한 UX 환경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왜 디자이너가 서비스의 전체 흐름과 맥락을 관리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대기 시간 문제를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예시로 확인하자면 명품이라고 불리는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입구에 서 있는 대기 줄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용자의 대기시간을 번거로운 행위에서 고급스러운 설렘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특별함, 설렘과 같은 감정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의 서비스 핵심적 요소이다. 성능적 문제라 치부한 처리 속도 문제가 고객 경험의 긍정과 부정으로 나타나는 것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할 때, 이러한 성능적 부분까지 고려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전통적 디자인과 서비스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며, 전통적 디자인이 추구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11.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금까지 좀 더 직관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제품과 서비스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심리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봤다. 특히 UX 적 관점을 넘어 서비스디자인적 관점에 대한 방향성 토론까지 함께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지식은 디자이너에게 제법 강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사용자의 목적이나 목표를 이끌어 갈 수 있다면 동시에 사용자의 목표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더 책임감 있는, 사회에 공헌하는, 장기적인 수명의 디자인은 디자인이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을 형성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SNS 초기 시절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즉각적 피드백에 매달리고 자극적인 정보로 이목을 사로잡는 서비스로 성장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서비스를 만든 디자이너와 회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사회가 오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적 무기를 악의적으로 다룬 사례는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다크 패턴(dark pattern)이 있다. 기술이 사용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자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구매, 불필요한 정보 공유, 마케팅 정보 수신 허용 등 사용자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오늘날 디자이너가 사용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와 개발에 집중할수록 디자인적 윤리성을 고려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제품이 실제로 사람들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드는지보다 ‘일간 활성 사용자(DAU) 수’나 ‘사이트 체류 시간’ 같은 지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 였을까? 서비스 사용자로 인한 데이터는 기업의 상업적 책임이나 디자이너는 기업과 사용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디자이너는 이런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사용자의 목표와 행복에 도움이 되는 윤리적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는 소임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우리는 이제 기술을 만들 때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의 문화를 고려하며,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민해야 한다. UX를 좋은 방향으로 올바르게 하는 것, 상업보다 윤리적 방향으로 가야 하는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디자이너가 이러한 윤리적 의식을 가지고 기업에서 상업적 목표로 활용하는 다크패턴과 같은 사례를 더 윤리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을 채운 아이디어로 제안해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으로 UX 디자인의 새로운 도전 방향이 될 것이다. 해당 아티클을 연재중인 연구실 SD4G의 뜻은 ‘Service Design For Good’ 의 약자로 이러한 올바른 디자인적 가치를 지향한다. 우리는 윤리적, 사회적 디자인 연구를 통해 디자인이 가진 힘을 믿고 올바른 영향력을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UX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이 “UX 디자인과 서비스디자인의 차이가 뭐야?” 와 같은 질문을 하는 지점은 여기서 온다. UX 디자인 즉 인간 중심 디자인의 맹점과 위험 요소를 고민하며 기업과 사회, 윤리적 문제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게 되면 디자인의 영역은 전체 서비스의 흐름으로 확장되고, 이는 서비스 디자인의 영역이 된다. 그러므로 서비스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UX 적 기초 지식이 필수적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커지고 해결해야 하는 과업이 크고 복잡해질수록 디자이너의 윤리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